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도전(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문단 편집) === 제6회 === * 이성계의 개경 인맥이 상당히 생략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경처였던 강씨 집안과의 관계 외에도 큰아들 방우(진안대군)는 [[지윤]]의 딸과 혼인했고, 강씨 소생 막내딸(경순공주)는 이인임의 동생 이인립의 아들인 이제(흥안군)와 혼인했기 때문에 권문세족 집안과도 인맥이 어느 정도 있었다. 다만 이인임 집안과의 혼사는 이성계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는 재료로 18화에 나오긴 하고 지윤과의 인맥은 지윤 자체가 스토리에서 비중이 생략되어서(...) 같이 생략된듯. 어쨌거나 이성계 집안 자체가 워낙 오랜 기간 변방에 있었고 저렇게 대놓고까진 아니었겠지만 은근히 차별하는 것은 있었을 것이다. * 안사기 사건의 세부적인 묘사가 다르다. 안사기가 김의의 수행원을 대접하여 박상충에게 탄핵당한 것까지는 같다. 고려사에서는 안사기를 탄핵한 후에 마침 판사(判事) 박사경(朴思敬)이 북원에서 돌아와 태후에게 보고하기를 "나하추가 저더러 '당신 나라 재상이 김의를 보내, 왕이 죽고 후사가 없으니 심왕을 받들어 왕으로 삼기를 원한다고 청하기에 황제께서 그렇게 한 것이오. 만약 전 왕에게 아들이 있다면 조정이 꼭 심왕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요.'라고 일러주었습니다.'"라고 하자 태후가 이인임을 불러, "듣건대 재상이 김의를 원나라에 보낸 지가 오래되었다는데 경들만 어찌 모르는가?"라고 꾸짖고 박상충의 상소를 도당으로 보냈으며, 왕명으로 하옥될 위기에 처하자 안사기가 도주 후 자결, 그 목을 효수했다고 되어 있다. 드라마에선 이 점을 각색하여 안사기의 조작책 중 하나가 정몽주를 포함한 신진사대부 측에게 미행당하고 확보당할 즈음에 칼을 꺼내들어 일행을 베어 위협하던 중, 지나가던 [[이성계]]에게 '''[[칼날잡기|칼날을 잡혀]]''' 제압당해 신변을 확보당한 뒤 자백하는 바람에 들통났다. 거기다 국문은 최영이 하므로 자백 안하고 못 배길 상황이라, 이인임이 몰래 찾아가 '당신 가족들의 목숨을 내 수하들이 쥐고 있으니 동이 틀 때까지 자진해서 가족들의 목숨은 보전하라'고 강요했다. 안사기는 비빌 구석이 있다면서 역관광을 보내주겠다 했지만 이인임이 안사기 부인 것으로 보이는 노리개를 내밀었고, 마음이 급해진 안사기가 최영과 정몽주를 면담하고 싶다고 한 사이에 그 틈을 노린 이인임의 자객의 화살에 맞고 사망. 사실 노리개는 원래 이인임이 갖고 있던 것으로 '''순전히 뻥카'''였다. 이인임의 자객은 사실 안사기의 가족이 아니라 안사기 본인을 노리고 있었던 것. 이인임이 "노리개라고 무조건 제 부인의 것이 아니거늘..."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압권. * 정도전이 유배지로 가기 전에 맹자를 정몽주에게 받는데 삼봉 본인이 후일 회고한 바에 따르면 정몽주에게 맹자를 받은 것은 그가 한창 영주에서 시묘살이 중이던 20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제사를 지내면서도 짬을 내서 한장 한장 열심히 읽었고 책을 보내준 정몽주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는 회고도 덧붙였다. 어쟀거나 그러니 '으아니 이 계집이 --나으 카와이한-- 몽주가 보내준 책을 불태우다니!'라는건 픽션. * 정도전이 부곡백성들을 막 가르치려 들면서 좌충우돌을 하는데 실제 정도전 본인도 처음에 유배를 왔을때는 오만한 마음으로 백성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나중가니 백성에게 부끄러웠다고 하고 있다. 삼봉의 글 답전보에서 한 노인에게 깨우침을 받고 '노인장을 진정 스승으로 뫼시고 가르침을 받아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다가 거절 당한 일을 적은 일도 있다. * 황연은 실제 정도전이 머물던 집의 보수주인이 맞다. 정도전의 저서 [[삼봉집]]에서 정도전이 나주로 유배갔을 당시 '황연의 집에서 살았다'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정도전은 황연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순박하고 허영심이 없지만 황연은 더욱 그러했다. 술을 잘 마셨고 그의 집에서 술을 잘 빚었는데 술을 빚으면 항상 나를 청해 함께 마셨다"라고 기록해 두고 있다. 다만 황천복이라던가 업둥이 관련 내용들은 죄다 픽션. * 드라마 내용은 아니고, 드라마가 끝난 뒤 나온 사적지 소개에서 오류가 몇 가지 있다. * 정도전이 지은 시 이름인 〈答田父〉를 '답전부'라고 읽었는데 사실 '답전보', 띄어쓰기까지 한다면 '답 전보'가 정확하다. 父는 '아버지'라는 뜻으로 쓸 때는 '부'로 읽지만 '사내'라는 뜻으로 쓸 때는 '甫'와 통용 가능한 글자가 돼서 '보'라고 읽는 게 정확하다. 이 점을 무시하고 父를 '보'라고 안 쓰고 '부'로 오기하는 예는 이미 굉장히 많지만 父가 뜻에 따라 '보'라고 읽힌다는 점에 유의한 매체들은 하나같이 '답전보'로 적고 있다. * 나주읍성(羅州邑城)의 동점문(東漸門) 누각에 걸린 정도전의 〈제나주동루(題羅州東樓)〉의 일부를 해석했는데 去國身如寄(거국신여기)를 '나라 떠난 몸 붙어사는 것 같아'라고 했다. 비유적인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도성 떠난 몸' 정도가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이는데, 國에는 '나라' 라는 뜻 외에 '도읍' 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한시에서 자주 보이며, 삼국사기를 읽다 보면 종종 나오는 國人이라는 말도 '나라 사람들' 이 아니라 '수도 사람들'. 더 나아가 중앙 귀족들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벼슬살이 하다가 지방으로 쫓겨난 당시 정황과 자연스럽게 맞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